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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체조수학

이차방정식의 근과 복소수의 탄생

by mathpark 2022. 12. 19.


문자가 들어 있는 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방정식이다. 방정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최고차항의 차수에 따라 1, 2차방정식 등이라 부르고, 여러 방정식을 동시에 고려할 경우 연립방정식이라 한다. 이들 방정식과 연립방정식을 구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연구되고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실제 문제를 푸는 데 어떤 수라는 말 대신 x와 같은 문자를 사용하여 푸는 방법을 도입한 사람은 그리스의 대수학자 디오판토스(246~330)로 그는 대수학을 수학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책 「산수론(Arithmetica)」은 대수학에서의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비문은 그가 생각해 낸 미지수를 이용한 일차방정식의 풀이를 이용하면 그 해답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묘에 묻힌 사람은 생애의 6분의 1은 소년이었고, 그 후 12분의 1이 지나 수염이 났으며 또다시 7분의 1이 지나서 결혼을 하였다. 결혼한 지 5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 4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x로 놓으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식으로 x를 구할 수 있다.


당시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의 해를 양의 유리수로 한정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산수론」에서는 암묵적으로 방정식의 해를 양의 유리수 해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발견되면서 수의 확장은 불가피해졌다.


근의 공식을 보면 양의 유리수로 설명되지 못하는 수가 나타난다.
하나는 무리수이고, 하나는 음수이다. 그리고 더욱 난해한 경우로 루트(√) 안에 음수가 있는 경우이다.
무리수를 인정할 때에도, 음수를 인정할 때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음수는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대표적인 이유로 ‘기하학적 대수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시대에서는 선분의 길이나 도형의 넓이 등을 기준으로 수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값이 ‘음수’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음수인 근은 수로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17세기 후반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인정받았다.


그런데 무리수나 음수인 근을 인정하였음에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루트 안에 음수가 있는 경우이다. 이차방정식 x^2=-1의 근을 근의 공식으로 구하면 x=±√-1인데 과연 이 x의 값도 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고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경우는 다름 아닌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x의 값’을 뜻하는데 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수많은 방정식에 빈번히 등장하였기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18세기에 오일러가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를 처음으로 기호 i로 나타내어 방정식의 모든 근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i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수, 즉 허수라고 불렸고, 실수와 허수를 모두 포함한 수를 ‘복소수’라 불렀다. 이후 수학자 가우스가 복소수를 ‘복소평면’에 나타내 허수를 시각화함으로써 학문적으로 허수가 유용하게 쓰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발췌 및 수정 : <숨마쿰라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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