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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남주자

'피치 드롭(Pitch Drop)' 실험

by mathpark 2019. 11. 7.

ㆍ현대인의 집중력 지속 시간은 갈수록 짧아져서 이제는 초 단위로 헤아려야 할 정도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팀의 조사로는, 취업 면접 때 처음 2초간의 인상이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미술관 관람객은 신중한 편이다. 미술관 관람객은 한 작품당 장장 5초를 할애한다.


ㆍ1927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 물리학과의 토머스 파넬(Thomas Parnell) 교수가 학생들에게 점도가 높으면 액체가 어디까지 느려질 수 있는지 보여줄 목적으로 실험을 하나 시작했다. 이 실험은 9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실험은 점도가 극도로 높은 액체가 필요했다. 파넬 교수가 선택한 것은 피치였다. 피치는 석유나 목재에서 나오는 타르를 증류한 뒤에 남는 찌꺼기다. 나무를 불완전 연소시키면 나무에서 타르와 피치가 흘러나와 숯이 만들어진다. 석유를 정제하고 남는 피치는 새카맣다. 어찌나 까만지, '피치 블랙(pitch black)'이 칠흑같이 까맣다는 뜻이 됐을 정도다.

과거에는 피치를 주로 선박과 방수 컨테이너의 밀폐제로 사용했다. 피치를 밀폐제로 쓰려면 먼저 열을 가해서 유동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다음에 밀폐제가 필요한 표면에 끼얹거나 바른다. 피치가 식어서 굳으면 효과적이고 내구성 있는 방수 외장이 완성된다.


ㆍ파넬 교수도 비슷한 방법으로 실험을 개시했다. 교수는 피치에 열을 가해서 흐르게 한 다음, 밑이 막힌 유리 깔때기에 부었다. 그리고 피치가 깔때기 안에 안정적으로 모여 실온으로 굳을 때까지 3년을 기다렸다. 파넬 교수는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의 '피치 드롭' 실험.

현재도 흘러내리고 있다.

(File:University of Queensland Pitch drop experiment)


마침내 1930년, 유리 깔때기의 줄기 밑단을 절단하자 피치가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실온의 피치는 정말로 느리게 흐른다. 느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느려서 그렇지, 흐르기는 분명히 흐른다. 깔때기를 개봉한 1930년 이후, 깔때기에서 첫 피치 방울이 유리 비커로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8년이었다. 지금까지 떨어진 피치 방울은 여덟 방울이다. 여덟 번째 방울은 2000년 11월에 떨어졌다. 하지만 피치 방울이 깔때기에서 분리돼 비커에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여덟 번째 방울이 떨어지기 몇 년 전,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할 목적으로 옆에다 웹캠을 설치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이면 여덟 번째 방울이 떨어질 때 웹캠이 고장이 났다. 아홉 번째 방울은 2014년 중에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2014년 4월에 아홉 번째 방울이 이미 떨어진 여덟 번째 방울에 닿았고, 비커를 교환하는 도중 깔때기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ㆍ'피치 드롭(Pitch Drop)' 실험을 지켜보는 것은 페인트가 마르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피치 드롭이 훨씬 더 지루하다.


ㆍ파넬의 피치 깔때기는 1961년 퀸즐랜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새로 부임한 존 메인스톤(John Mainstone) 교수의 눈에 띄면서 학계의 이목을 모았다.


ㆍ실온 기준으로 라드(돼지비계를 정제해서 굳힌 것)의 점도는 물보다 최소 100만 배 이상 높고, 파넬의 피치 점도는 그런 라드보다 약 10만 배 높다.


ㆍ토머스 파넬은 두 번째 피치 방울이 떨어진 지 1년 반 후인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네 번째 방울이 떨어지기 1년 전인 1961년에 존 메인스톤 교수가 '피치 드롭' 실험을 '발굴'했다. 메인스톤 교수는 2013년 8월에 별세할 때까지 52년 동안 이 실험의 교육적, 역사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 교수는 피치 방울이 떨어진 시점들과 세계사적 사건들을 엮은 타임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다섯 번째 방울이 떨어지기 1년 전인 1969년에 인류가 처음으로 달 위를 걸었고, 일곱 번째 방울이 떨어진 지 1년 후인 1989년에는 철의 장막이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졌다.

- 존 M. 헨쇼 <세상의 모든 공식>에서 발췌.



이 실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행 중인 과학 실험으로 기네스 기록에 등록되어 있으며, 웹(The Tenth Watch)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 via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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