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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4

손님 - 황석영 ◆ 악몽은 사실이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생생함을 잃어버린 말은 또한 얼마나 가벼운가. ◆ 세상이 죄로 가득 차두 사람이 없애가멘 살아야디. ◆ 사람은 무슨 뜻이 있거나 가까운 데서 잘해얀다구 기랬디. 늘 보넌 식구들과 동니 사람들하구 잘해야 한다구. 길구 제 힘으로 일해서 먹구살디 않으문 덫을 놓아 먹구 살게 되넌데 기거이 젤 큰 죄라구 말이다. ◆ "저들도 교인을 살해했어요." "너이덜 말대루 그 사람덜은 믿지 않던 사람덜 아니냐?" ◆ 기런 때엔 기도허는 거이 아니다. 나타나문 보아주구 말하문 들어주는 게야. ◆ 그때 우리는 양쪽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했다. ◆ 저 새낀 수박이다, 아니다 사과다, 아니다 .. 2019. 10. 21.
투명인간 - 성석제 ◆ 그녀 덕분에 나는 어느 때보다 빛나는 인생의 한때를 누렸다. 하지만 이별의 슬픔이 나를 강습해 개처럼 바닥에 쓰러뜨리는 데 대해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 ― 야, 이 개씨바라, 니주가리 씹창 내기 전에 해골 디밀지 말고 아가리 처닫아. 네 곱창에서 올라오는 똥 냄새 때문에 오바이트 나올라고 하거든. ― 해삼 멍게 말미잘 해파리 같은 놈이 이빨 좀 까네. 쪼다 촌놈 하나 갈구니까 똥창이 흐뭇하냐. ◆ 자 그럼, 사소하고 지루하게 길었던 나의 삶이여, 이만 안녕. ◆ 뭘 쓴다는 것은 살아온 날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사람에 대한 생각, 감정, 어떤 순간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조금 더 그게 선명하게 보이고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 ― 사람이라도 다 사람이더냐. 옳은 사람이.. 2018. 8. 27.
소년이 온다 - 한강 ◆ 시상에, 시체가 저렇게 많은데 무섭지도 않냐. 겁도 많은 자석이. 반쯤 웃으며 너는 말했다.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 2016. 6. 4.
채식주의자 - 한강 ◆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 한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 용서하고 용서받을 필요조차 없어. 난 당신을 모르니까. ◆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 2016.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