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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누이2

미분의 발명과 분쟁 1675년에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는 『분수에도, 무리수에도, 장애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극대와 극소, 또한 접선에 대한 새로운 방법, 그리고 그것을 위한 특이한 계산법』이라는 긴 제목의 수학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미분학의 발명을 둘러싼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라이프니츠가 이 논문을 발표하기 10년 전, 이미 미분을 아이작 뉴턴이 알고 있었다. 뉴턴은 타원이 회전할 때 순간의 속도를 유율이라 정의하였는데 이것이 미분의 개념이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동료의 권유로 책으로 출판하려 했지만 조금 미루다 결국 라이프니츠가 먼저 미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들은 뉴턴이 미분의 창시자라고 생각했지만, 라이프니츠의 추종자들은 뉴턴이 그의 이론을 표절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2020. 8. 25.
천재 수학자들의 오류 이탈리아의 수학자 그란디(Grandi, L. ; 1671~1742)는 1703년에 무한급수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서로 다른 합을 구하였다. 그는 급수의 합이 이처럼 두 가지 값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결국 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등식 에 을 대입하면 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로부터 , 즉 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Leibniz, G. W. ; 1646~1716)는 철학자 울프(Wolff, C. 1679~1754)에게 쓴 편지에서 그란디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합 S가 0 또는 1이 될 확률이 같기 때문에 S는 확률의 이론에 의하여 그 평균인 이라고 하였다. 베르누이(Bernoulli, J. ; 1654~1705), 오일러(Euler, L. ; 1707.. 201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