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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2

미분의 발명과 분쟁 1675년에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는 『분수에도, 무리수에도, 장애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극대와 극소, 또한 접선에 대한 새로운 방법, 그리고 그것을 위한 특이한 계산법』이라는 긴 제목의 수학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미분학의 발명을 둘러싼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라이프니츠가 이 논문을 발표하기 10년 전, 이미 미분을 아이작 뉴턴이 알고 있었다. 뉴턴은 타원이 회전할 때 순간의 속도를 유율이라 정의하였는데 이것이 미분의 개념이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동료의 권유로 책으로 출판하려 했지만 조금 미루다 결국 라이프니츠가 먼저 미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들은 뉴턴이 미분의 창시자라고 생각했지만, 라이프니츠의 추종자들은 뉴턴이 그의 이론을 표절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2020. 8. 25.
극한의 엄밀한 정의 미적분을 공부하다 보면 코시라는 수학자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코시-슈바르츠의 부등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코시라는 수학자의 이름을 이미 들어 봤을 것이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에 업적이 많다. 특히 극한이라는 개념의 엄밀한 정의를 만드는데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 또한 과학아카데미에서 논문의 분량을 4페이지로 제한한 이유가 코시의 논문 양이 매우 많아서였기 때문이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코시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자주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라플라스와 라그랑주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들은 그에게 수학 공부를 권유하게 되었다. 1805년에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하여 공학을 전공.. 2020.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