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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단상

라면을 끓이며 - 김훈

by mathpark 2016.10.02

◆ 허상은 헛됨으로써 오히려 완강할 테지만 실체는 스스로 자족하므로 완강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 자연은 저 자신의 볼일로 가득 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냉정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적대적으로 느낀다.



◆ 나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같은 사소한 일상에 자리잡는 평화를 생각했다.



◆ 생명을 서로 긍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의 평화는 불가능할 것인지를 나는 강가에서 생각했다.



◆ 시간 속에서는 덧없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모든 강고한 것들은 무너지지만, 저녁노을이나 아침이슬은 사라지지 않는다.



◆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亡者)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게꾼이 지게를 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가고, 할복을 하고 분신을 해서 지옥에 간들 이미 그 해악이 세상에 퍼져버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책임을 진다'는 행위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말은 쫓겨났다는 뜻이고, 그 쫓겨남으로써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빈말이다.


◆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낱알들이 입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 원고료로 받은 1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마누라 몰래 쓰려고 책갈피 속에 감추어놓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맹자』 속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성인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른 책으로 바꾸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맹자』 속에도 없고, 『공자』 속에도 없고, 『장자』 속에도 없고,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조리 뒤져도 없다. 수표를 찾으려고 『장자』를 펼쳐보니 "슬프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외물에 얽혀 마음과 다투는구나"라고 적혀 있어 수표 찾기를 단념할까 했으나 또 그다음 페이지에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내 언젠가는 기어이 이 수표 두 장을 찾아내고야 말 터이다.



◆ 사람이란 뻔한 일을 대놓고 뻔하게 말해주면 약올라하게 마련이다.



◆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 자유를 노래할 때도, 그 노래를 노래하게 하는 것은 결국은 부자유일 터이다.



◆ 나는 몸을 써서 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본론』의 각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망치를 들고 못을 박을 때, 못이 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 톱으로 나무를 자를 때, 톱 지나간 자리가 가지런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나는 창피하다. 삽으로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을 때, 삽날이 땅속에 깊이 박히지 못하는 일을 나는 수치스럽게 여긴다.



◆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 역시 소설가는 산문보다는 소설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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