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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단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by mathpark 2015. 1. 3.

◆ 언젠가 할머니에게 양반이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픽 웃으시면서 "개 팔아 두 냥 반이란다."라고 대답하셨다.



◆ 나는 비록 상중에 울진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오래 할아버지를 여읜 상실감과 할아버지에 대한 자잘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을 남기지 않은 할아버지 신관의 섬세한 부분까지, 그리고 다들 잊어버린 사소한 버릇이나 일화까지를 어른 되고 시집간 후에도 기억하고 있어서 기억력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그게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 딸일수록 맛있는 걸로 입맛을 높여 놔야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지 먹어 보지 않은 음식은 결코 맛있게 만들 수 없다는 엄마의 생각은 "입병 난 며느리는 써도 눈병 난 며느리는 못 쓴다."는 지독한 말이 아직도 유용하던 당시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이었다.



◆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도처에 범람했지만 별안간 그 눈부신 걸 바로 보기엔 우리가 눈을 뜬 지 불과 얼마 안 돼 있었다.



◆ "야, 말이야 바른 대로 말이지, 요새야말로 느이 오래비가 공산당질 바로 하는 것 아니냐? 한 달 내내 뼛골 빠지게 뇌동해서 처자식 밥 안 굶기면 그게 공산당이지 더 어떻게 공산당질을 잘하냐 잘하길."



◆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을 지경까지 몰렸을 때의 평화로움 안에서 우리는 깊은 숙면에 빠졌다.



◆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 우리 세대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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