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좀해보자

세월호 참사 기고문

by mathpark 2014. 5. 30.

2014.04.24부터 시작하여 계속 업데이트 중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홍세화('말과 활' 발행인)>


비통하고 참담하다. 이웃의 고통과 불행에 무감해진 사회라 하지만 이 가혹한 시간을 별일 없이 감당하는 동시대인은 어떤 인간인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한다. 탑승자 476명, 구조자 174명. 실종자와 사망자 302명.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종자가 사망자로 바뀌었을 뿐.


본디 실종자라는 말은 올바른 정명(正名)이 아니었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명칭과 실질은 일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모두 배 안에 갇혀 있었다. 실종자는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국민 모두 알고 있었다. 생사는 알 수 없지만 종적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실종자보다 긴급구출 대상자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정부 당국은 연일 함정 수백척, 항공기 수십대, 잠수요원 수백명이 구조 활동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나만 그랬을까, 그 숫자들이 공허하게 다가왔다. 하물며 생때같은 자식을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운 사지에 둔 채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른 부모들에게 그 숫자는 무엇이었을까.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34조에 값하는 것이었던가. 그 숫자들은 긴급구출이 요청되는 국민을 실종자로 규정한 뒤 ‘실종자 수색’ 교범에 따른 군사행정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실상 긴급이란 말도 부족했다. 순간순간이 경각과 같았다. 바로 눈앞에, 코앞에, 300에 이르는 국민이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다. 국가라면, 국가다운 국가라면 국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구조의 손길을 뻗는 일에 총력을 집중해야 했다. 군, 관, 민의 구분이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역량과 모든 지혜를 모아야 했다. 그런데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침몰 첫날 실제로 잠수한 요원은 단 16명, 그 이튿날도 38명뿐이었다. 절체절명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유속이 빠르고 시계(視界)가 좁아 잠수 자체가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대천명’(待天命) 이전에 ‘진인사’(盡人事)가 없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늘을 탓하기 전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분노와 절망은 무엇보다 이 점에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단 일초가 여삼추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에 마음으로 공감할 줄 아는 정부 당국자를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없거나 부족한데 행동이 따를 리 없었다.


무릇 못난 자일수록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에 앞서 남 탓을 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그에 맞는 능력과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절망으로 바뀌어가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지목해 “살인과 같은 행태”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비판적 지적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살인’이나 ‘암’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 살인이라는 말은 살인정권을 떠오르게 하고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도 물론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들은 비난받아야 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계속되는 중에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하여 탈출한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동시대를 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 있었을 때 누구처럼 행동했겠는가? 승객들을 사지에 놔둔 채 도생한 선장이나 선박직 선원들처럼 행동했겠는가, 아니면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주면서 살아 나오도록 도와준 뒤 목숨을 잃은 박지영씨처럼 행동했겠는가. 이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저울질하는 이른바 언론인에게, 바다가 세월호를 완전히 삼킨 날 기념사진을 찍은 분에게, “청와대 안보실은 재난 사령탑이 아니”라면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청와대 인사에게 정말로 묻고 싶다. 그대가 그 선장과 선원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워낙 높은 분들이어서 그런 하찮은 자리에 있을 일은 결코 없다고 답할 것인가. 같은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박지영씨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러면 젊은이들에게 배를 벗어나도록 도와준 뒤 자신도 일단 살아남았지만 참담한 상황을 목격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선생처럼 행동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물음에도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어서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나 선원의 자리에 있었다면?’ 하고 물어보았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먼저와 달랐다.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구하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하다가 마침내 두 동강 나 심해 속으로 빠져 들어간 타이타닉호와 함께 장렬하게 수장되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0세기 초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선원 같은 선장과 선원을 21세기 한국에선 찾을 수 없기 때문인가. 세월호 선장은 1년 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이다. 다른 선원들도 다수가 비정규직이다. 그들에게 배는 다만 밥벌이를 해주는 임시적 일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타이타닉호의 선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움켜쥐었던 키는 타이타닉호와 자신이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그것은 직업으로서의 소명의식과 함께 자존감, 그리고 어떤 고결함까지 형성케 했을 것이다. 한국의 선장과 선원들에게는 그런 상징물이 없다.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일체감도 애착도 기대할 수 없고 선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사불란함도 없다. 그들에게 자신이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선체 고장이 자주 일어났는데 ‘괜찮겠지’ 하면서 대충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자본의 이윤 추구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줄푸세’의 핵심논리다. 이명박 정권은 경비 절감을 이유로 20년으로 제한된 여객선 선령을 30년으로 연장해주었다. 돈벌이에, 자본의 이윤 추구에 사람의 안전은 고려사항에 속하지 않는다. 온통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차라리 뻔뻔함이 성공의 열쇠가 된 사회다. 중고 배를 수입해 증축해도 안전검사를 쉽게 통과하고, 컨테이너를 결박하지 않은 채 과적하여 운항해도 통제되지 않는다. 이런 게 세월호만의 일이겠는가.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되어 자리 잡힌 경향이고 흐름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아래 자본과 국가기관은 탈규제에 있어서 한통속이었다. 모든 규제를 암이라고 규정한 박근혜 정권의 시대에는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탑승자와 구조자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만큼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을 엄단하겠다고 윽박지른다. 유언비어가 신뢰 없는 사회의 반영물이라는 점을 돌아볼 때 정부가 그 진원지임을 모르는 것인가. 책임의식이 추호도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들에겐 이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정부”인 것이다. 돈과 자본 앞에 사회가 오래전에 무너졌듯이, 대학과 언론이 무너졌듯이, 민주주의는 이미 죽었다.


지금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넉넉지 못한 살림에 쌈짓돈을 모아 보낸 자식들은 영영 부모 곁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동시대를 사는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하고 또 송구할 뿐이다. 이 잘못된 사회의 흐름을 막지 못한 무능함도 큰 죄일 터, 망자들에게 명복을 빈다고 말하기에도 면목이 없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2014.04.24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되는 이유' - 박성미(영화인)>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을 요목 조목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쉬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물러나라 라는 구호는 너무 쉽고, 공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시민들이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임무를 수행 해야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첫째,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방법 고민 할 필요 없다.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이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엇보다 무슨 수를 쓰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행부 책임 하에서 잘못을 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가 책임소관을 따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 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은 현장에 달려가 상처 받은 생존자를 위로한답시고 만나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 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씨씨티비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 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고,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맡아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돼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 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 자신은 책임을 피한다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자가 되면 달라진다. 유속의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 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시정할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건 인력을 모으건 해양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건,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둘째,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을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걸고 물 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던 말 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을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하고

죽겠다 함께 살자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렸다. 

이곳에선 한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대의가 더 많다.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된다’ 는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의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에서

이럴 때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줘라 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 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애를 쓴 사람들. 

선장과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이다. 


이것은 이들의 평소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라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남일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리더의 잘못을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셋째,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그것이 [책임에 대한 대가] 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덧붙임.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 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 2014.04.27 (청와대 게시판)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 도올 김용옥(한신대 석좌교수)>


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

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 2014.05.02






<집단적 비명횡사 공화국, 가만있으면 안된다 -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월호 참사 후 어느 날 라디오를 켰더니 희생학생들의 옷을 보관하고 있는 세탁소 주인아저씨의 사연이 나왔습니다. 


목젖 밑이 울컥하였습니다. 이후 일요일 새벽 안산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앳된 얼굴의 영정을 하나하나 보다가 ‘몽셀 통통’이라는 과자 상자를 보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희생자 학생 중 한 명이 이 과자를 좋아했나 봅니다. 또는 조문하러 온 학생이 자신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용돈을 털어 샀는지도 모세월호 참사 후 어느 날 라디오를 켰더니 희생학생들의 옷을 보관하고 있는 세탁소 주인아저씨의 사연이 나왔습니다. 목젖 밑이 울컥하였습니다. 이후 일요일 새벽 안산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앳된 얼굴의 영정을 하나하나 보다가 ‘몽셀 통통’이라는 과자 상자를 보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희생자 학생 중 한 명이 이 과자를 좋아했나 봅니다. 또는 조문하러 온 학생이 자신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용돈을 털어 샀는지도 모릅니다.


분향소와 희생자들이 다녔던 학교 근처의 주택들을 둘러보니 유명 브랜드와는 거리가 먼 작은 서민용 아파트와 연립주택이었습니다. 여기서 공부하고 놀며 꿈을 키웠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희생자 학생 중 한 명이 장관, 국회의원, 장군 집 자식이었다면 구조 활동이 어땠을까 하는 ‘편향적 상상’이 들었습니다. 귀갓길에서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 사고 당일 오전과 오후에 대한민국에 있는 구조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지 않았는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죽음을 단지 ‘자살’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는 ‘경제적 타살’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같은 일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은 단지 ‘사고사’가 아닙니다. 이는 탐욕에 빠진 개인, 기업, 정부에 의한 ‘제도적 타살’입니다. 이 ‘제도적 타살’의 주범과 공범에게 엄정한 정치적·법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사과에서 ‘적폐’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몸담고 있는 정당과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이 ‘적폐’의 일부라는 점을 직시하길 바랍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만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한 사람과 세력이 누구인가요. 또한 박 대통령은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별하지 않고 규제를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제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답하길 바랍니다.


불법적으로 선박을 개조하고 화물 과적을 지시한 자, 선박안전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문제점을 눈감아 준 자, 선박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기한 자, 선박사고 후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구조임무를 소홀히 한 자를 샅샅이 밝혀내야 합니다. ‘해피아’(해수부 마피아) 등 이들의 정치적·사회적 뒷배 역시 징치(懲治)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내에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로 설치되어 있던 ‘위기관리센터’를 해체시킨 자, 작년 국가재난관리체계를 최고 등급인 ‘우수’로 평가한 자, 규제혁파 운운하며 노후 선박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안전규제를 완화시켜 준 자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번 참사는 재해예방과 국민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 제6항이 쭉정이만 남은 조항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재난과 위기관리는 정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초당적 협력을 통하여 관련 업체에 대한 규제를 세밀화·엄격화하고, 재난과 위기 종류별로 통합대응훈련을 상시화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비로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믿고 있다가 배 안에 갇혀 공포와 고통 속에서 손가락뼈가 부러지도록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은 학생 등 탑승자들과 그 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돈과 이윤에 의해 주변화(周邊化)되어 버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다시 국가와 정부의 중심목표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좌파 발본색출” 운운하며 색깔론을 펼쳤고, 권은희 의원은 유가족을 “선동꾼”이라고 비방했고, 윤상현 의원은 추모리본 달기를 거부했습니다. 김황식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박 대통령을 지키자”는 문자메시지를 돌렸습니다. 이들에겐 무능력, 무책임, 무대책의 ‘삼무(三無)정권’을 수호하고 ‘최고 존엄’을 옹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편 새누리당 송영선 전 의원은 이번 참사가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기에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고 평했습니다. 이들에게 죽음은 숫자일 뿐입니다.


사실 기득권 체제는 국민에게 언제나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왔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정권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고문하거나 사건을 조작할 때도, 4대강을 파헤쳐 국토를 유린하고 생태를 파괴할 때도, 정보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민주헌정을 뒤엎었을 때도, 재벌이 엄청난 경제범죄를 일으킬 때도, 언론이 왜곡보도를 할 때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있지 않겠다”로 대응해야 합니다. “내 잘못도 있다”며 자책만 할 때가 아닙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 


그렇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집단적 비명횡사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또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릅니다. 이런 제도와 체제 아래에서 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예비했고 또한 제2, 제3의 참사를 예고하고 있는 제도와 체제를 바꾸어야 합니다.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항구화하는 ‘원수’이자 ‘암 덩어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고 이권과 자리 확보에 여념이 없는 각 분야 정경유착 마피아들의 손발을 묶어야 합니다. ‘대한민국호’의 승객인 우리가 나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선주와 선장과 선원을 감시하고 감독하고 질책하고 나아가 갈아치워야 합니다. ‘대한민국호’는 우리와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이 타고 있는, 그리고 우리 후손이 탈 배이기 때문입니다.


가만있지 맙시다. 가만있으면 안됩니다.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 2014.05.07






<어느 한 '강남 좌파'의 생각 - 박근영(서울 서초구 구민)>


"강남서초는 언제나 새누리당 지지인가요?"


대한민국 중산층의 심장부라는 서초구 주민으로서 묻습니다. 강남 서초에 사시는 책 좀 읽은 분들, 이 상황에서도 새누리당 찍으실 작정입니까?


저는 서초구에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아빠입니다. 소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꽤 큰 기업의 임원입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자네요. 그런가요? 서울대 나와 서초구 살고 회사 임원이면, 자동적으로 새누리 지지자가 연상되나요?


묻습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 환경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의도가 분명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있습니까? 세상 어느 나라에 자기가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멍청한 이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있습니까?


박근혜는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한다는 공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그 공약을 읽었습니다. 문재인과의 토론회에서 보였던 장면은 이 사람의 본질을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20만원 지급의 현실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나니까 한다는 거 아닙니까?” 이런 대응을 합니다. 이게 이성을 갖춘 사람의 언사입니까?


아마 김기춘 류의 유신 잔당들이 실세고 박근혜는 얼굴마담에 불과하겠지요. 80년대 대학교 다니면서 집회도 좀 참여해 보고 사회과학 서적도 읽으셨고, 박노해 시도 한 번쯤 읽어보시고, ‘좋은’ 직업 얻으시고 우아하게 살아가시는 강남 서초 주민 여러분, 쪽팔리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것이?


이 상황에서도 박근혜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짜 머리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이 고3이라 저도 수능에 관심이 많은데, 국어 영역 읽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박근혜가 이걸 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사람 수능 국어 영역 시험 보게 해야 합니다. 아마 100점 만점에 27점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5지 선다형 시험이니 20점은 찍어도 나옵니다).


대치동 아이들이 희생당했어야 생각이 바뀌실 겁니까? 미칠 것 같지 않으십니까? 여러분도 눈물 흘리지 않으셨나요? ‘강남 서초 살면 새누리당 지지자’라는 등식 아직도 유효합니까?


정몽준 아들이 한 말을 보십시오. 정말 개만도 못한 놈입니다. 정몽준 아들이 한 말을 보시고도 생각이 바꾸지 않으시는가요? “아들과 아버지는 독립적인 개체이다.”라고 말하시며 ‘쿨’하게 대처하실 예정인가요?


이러한 판국에 극우 세력은 정말로 보기 드문 꼴을 연출합니다. 지만원, 정미홍, 변희재… 이 사람들은 인간성이 쓰레기일 뿐 아니라 머리도 나쁩니다. 제가 극우라면 입 닫고 조용히 여행이나 다니겠습니다. 입 벌리면 무조건 마이너스라는 것을 모르네요.


분노한 아이들의 집회 참여를 “6만원 일당을 받고 동원 당했다.”고 하는 정미홍. 하루가 못 가 꼬리 내릴 거면서 흥분해서 자기 자신을 매장시켰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번 대선 때 이 사람이 누구 찍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이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려 하십니까?


여러분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태인만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집시와 폴란드, 소련 민간인들까지 합치면 민간인만 1,100만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 군국주의 세력과 극우 세력들의 조선인 학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천 명 넘게 학살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본에 산다면 아베 총리를 지지합니다. 북한에 산다면 김정은 지지 세력이 됩니다. 남한에 산다면 현재의 질서를 지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현재의 질서를 지지하시겠습니까? 압구정동, 반포동, 대치동 아이들도 죽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경기도의 소도시 아이들의 목숨 값은 강남 서초 아이들만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정치판이라는 게 정말 한심해 보이는데, 제가 무얼 해서 변화가 될까 하는 회의 속에 살았습니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보고 개그콘서트도 보고 1박2일도 보고 그러면서 분을 삭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은 참기 힘드네요. 저도 이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구구절절하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1. 박근혜는 물러나야 합니다.

2.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3. 근본적 변화는 언제나 어려운 것이지만, 지금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6년간 일어난 일들을 해결하다 보면 결국 근본적 변화가 달성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4대강 사업을 제대로 파헤친다면 우리는 이명박이 무엇을 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명박과 재벌의 야합, 그리고 더러운 돈의 흐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대강 사업에 들어간 비용 30조원과 원상 복구 비용 10조원(추정)을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빼앗아야 합니다.


국정원 등의 대통령 선거 부정행위를 제대로 파헤친다면 우리는 새누리당이 내란음모 조직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더 나아가 내란의 주체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총을 들어야만 내란이 아닙니다. 원래는 문재인이 수장이 되어야 할 국가권력을 그들은 사기와 협잡으로 빼앗은 것입니다. 이게 내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고로 저는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아마추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립학교법이나 종부세 이슈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회사 하면 딱 말아먹을 아마추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노무현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립학교법 반대를 위해 국정을 마비시킨 박근혜가 더 나쁜 것 아닙니까? 영남대, 이거 장물입니다. ‘경주 최부자’가 설립한 거 박정희가 뺐었고, 그걸 박근혜가 물려받은 것입니다. 강도 딸이 대통령입니다. 여러분 창피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역사 공부를 조금만 하셨다면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고 만주국(일제가 중국 일부를 무력 점령하고 세운 괴뢰국가) 장교로서 독립군 ‘토벌’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는 남로당 조직에 들어갔다가(‘좌익’으로 변신), 체포당하자 남로당 명단을 다 불고 혼자 살아남아 다시 극우로 변신한 사람입니다. 비열한 양아치의 전형이지요.


20대 여대생들과 밤마다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사람은 다 짐작할 수 있지요. 공감이란 말이 있습니다. 감정이입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딸을 강제로 범했던 사람입니다. 죽는 날까지 여대생과 유명 가수를 옆에 앉히고 유흥을 즐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반신반인’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근혜를 ‘반신반인’의 딸이니 고귀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과 동일한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이재용이나 최태원이 아닙니다. 자수성가했습니다. 우리는 의사이고 변호사이고 회사의 간부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투표는 무조건 1번을 찍는 행위이다.”라고 배운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차이를 압니다. 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람과 철인독재를 주장한 사람의 차이를 압니다.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도 했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거의 치매 상태와 유사한 정당을 지지해야 하나요? 수지(미스 에이) 사진을 강간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애들과 같은 정당을 지지해야 하나요? 친일파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김무성 같은 친구를 지지해야 하나요?


부산 해운대구 주민 여러분, 송정 해수욕장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자력발전소가 있습니다. 그거 문제 생기면 여러분 다 죽거나 장애인 됩니다. 그 원전 관리를 세월호 사건을 참사로 만들었던 그 세력이 하고 있습니다. 해운대구 주민 여러분,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여러분. 호소합니다. 언제까지 이 세력을 지지하는 ‘자동거수기’가 되실 겁니까?


국가와 사회를 개조해야 합니다. 누구나 인정합니다. 심지어 박근혜도, 조선일보도 그걸 인정합니다. 근데 문제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care’하게 맡기자는 것이 박근혜와 조선일보의 주장이라는 겁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아이들을 사랑하십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내 아이만 지나치게 사랑한 경우와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경우. 여러분은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입니까? 아니면 보편적 인류애를 실현하실 것입니까?


저도 한심한 인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한심한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머리 하나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변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호소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실천합시다. 모든 이가 같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가장 쉬운 것은 강남 서초 주민도 기호 1번 자동 거수기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작은 일에 동참해 주시고, 또 더 나아가 무언가를 함께 하실 수 있다면,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사회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 2014.05.09






<The Sewol on Our Shores(우리 해안의 세월호) - Christine Hong(UC Santa Cruz 대학 조교수)>


일부 한국교민 활동가들에게 있어 세월호 여객선 참사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미국이 큰 역할을 했던 한국 독재 과거의 산물임을 상기시켜준다.


지난 일요일인 5월 18일,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시의 엘 까미노 리얼 가와 플로라 비스타 가 사이에 모인 300명의 한국교민들은 추모의 색인 검정색 복장으로, “엄마들은 진실을 원한다”, “한국에 민주주의를”, “무능한 정부”,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사고가 아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노란색 사인을 들고, 구호가 적힌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세월호 비극과 관련, 한국교민 활동가들이 곳곳에 만연한 규제완화,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300명 이상의 사망자 대다수가 단원고 학생인 세월호 참사에 주로 초점을 맞춘 이번 집회는 일부 이민배척주의자들로부터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몇몇 운전자들은 자동차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먹을 흔들면서 반아시아적 비방과 함께 “너네 나라로 가라”고 외쳤다. 한 사람은 코너를 돌아 사라지기 전에 우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집회에 대한 산호세머큐리뉴스의 기사에 딸린 댓글에서 한 독자는 많이 들어본 말을 했다. “당신들이 그렇게 외국 정부에 관여하고 싶다면, 그곳으로 이사 가라.” 이와 같은 사람들로부터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외국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외국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계화된 우리 시대에는 아마 특히나, “그곳”과 “이곳”을 연결한다는 것은 초국가적인 조직화와 결속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을 상당히 야기한다.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도대체 왜 관심을 가져야하는가? 왜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해야 하는가?


산타클라라의 한국계 밀집 거주 지역인 사우스베이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사인들과 모자들에 적힌 메시지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 앞을 지나갔던 교통 행렬마다, 몇몇 차들은 지지의 경적을 울렸다. 이 혼잡한 교차로에 서있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이 운전자들에게도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 먼 나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집회는 참사에 대한 특검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자 한국에서 진행중인 촛불집회와 연대해서 미국 전역의 도시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들에 의해 마련된 30여 개의 시위들 중 하나였다.


한편 이 집회들의 의미는 더욱 깊다. 분주한 아시아계 이민 기업가들의 중심지인 산타클라라 시에서도 이 집회는 정부의 언론조작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만연한 규제완화와 인명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 불규칙하고 부실하게 훈련받은 노동자와 민영화된 구조작업 등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제시했다. 사실, 한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KCTU)은 이 여객선 참사를 비극이나 사고가 아닌 “자본주의적 욕심”이 “이익증가를 위해 안전과 책임감”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 예측가능한 참사라는 의미로 “정치권력과 자본이 저지른 학살”이라는 노골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일궈낸 곳으로 빈번히 선전되는 한국에서 전국민에 의한 여객선 희생자 추모는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기업 족벌주의에 대한 분노의 고조로 형태가 바뀌어왔다.


자본주의의 이 어두운 면들은 세계 무대에서의 한국의 성장에 관한 핑크빛 이야기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급격한 고도 성장의 대부분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던 40년간의 독재기간 중에 “한강의 기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훨씬 더 친숙하게 들어온 38선 이남의 번영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밝은 면의 저변에는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가 과장이 아닌 실제의 모습으로 숨겨져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재향군인 청중들 앞에서 한국전쟁이 “무승부가 아니었다”고 선언하면서 그 예로 한국의 자본주의는 한국전쟁의 승리라고 설명했다: “억압과 빈곤에 빠진 북한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며 5천만의 한국인이 자유롭게,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국가이며 생생한 민주주주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 그것이 승리이다. 그것이 여러분의 업적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제기하는 질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상호관계라는 것이 쉽게 추정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 자본주의가, 미국의 역할이 컸던 과거 역사의 어두운 독재와의 관계를 이제 파기하는가 하는 것이다. 검은색(애도)과 노란색(보수주의자 이명박과 박근혜의 선임인 진보적인 노무현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관련된 색)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 시위는 미국과 한국 군부사이의 결탁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상징한다.


34년 전 1980년 5월 18일, 한국 광주시의 학생들과 노조 조직자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군부독재 정권에 대항해서 민주화 항쟁을 일으켰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일으킨 한국 국민들에 대하여 군사력의 사용을 허용했던 이 분수령같은 사건은 그 이후 한국내와 재외한인공동체의 한국인들의 투쟁에 활력을 넣어주었다. 미국이 개입한 덕분이 아니라 그 개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졌고, 바로 이 같은 민주주의에 대해 헌신하는 마음을 엘 카미노 가와 플로라비스타 가 사이에 있었던 행동에서 우리는 보았다.


- 2014.05.21(현지시각) 미국의 싱크탱크 FPIF(Foreign Policy In Focus) 홈페이지


>> 영문 원본보기





<어느 한 '강남 좌파'의 생각 ② -  박근영(서울 서초구 구민)>


"대구경북 주민 여러분, 안녕한가요, 4년 후에도 안녕할까요"


저는 서울시 서초구에 거주하는 남성입니다. 꽤 큰 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지난 8년간 매년 1억 이상 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올해에도 그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돈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글의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개인 얘기이지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대구경북 시민 여러분은 현재의 질서를 가장 옹호하는 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통계를 보아도 저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다음의 표를 보십시오. (관련 글 링크)


2012년 7대 도시 및 9개 도 개인소득 현황(단위 : 천원) 출처 : 통계청 보도자료(2013.12.23)



대구 시민들의 소득은 전국 평균의 96.9%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별시와 광역시 중 대구보다 ‘가난한’ 도시는 인천과 광주뿐입니다. 울산과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고, 부산과 대전보다도 소득이 적습니다. 경북도민들의 소득은 전국 평균의 90.9에 불과합니다.


대구 시민들은 2012년에 1인당 1430만7천 원을 벌었습니다. 경상북도 도민들은 1인당 1342만9천 원을 벌었습니다.


보통 돈을 많이 버는 분들이 현재의 질서를 옹호하지 않나요? 저는 2012년에 1억 이상을 벌었습니다. 여러분보다 평균적으로 10배 이상을 벌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의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그렇게도 현 질서를 좋아하십니까?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말하겠습니다.


이재용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저보다 아마도 공부도 못했고(이 친구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업적도 별로, 아니 전혀 없습니다.


알려져 있는 것이라고는 미원 만들던 대상그룹의 임 모 씨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것, 그리고 아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영훈 국제중에 입학시켰다가 들통이 났다는 점 정도입니다. 저와는 나이도 엇비슷합니다. 근데 이 친구가 제 재산의 몇 백 배, 혹은 몇 천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이거 기분 나쁩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재용 친척이 있습니다. 이재현이라고 하는 CJ그룹 회장입니다.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은 놈이 회사 돈 빼돌리다가 걸려서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SK그룹 회장 최태원이라는 친구 아시죠? 이 친구도 감옥에 있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더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이라는 친구도 아마 감옥에 있죠. 이 친구는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조직폭력배 동원해서 린치를 가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효성은 3부자인가 4부자인가가 모두 다 감옥에 갈 위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재용 이재현 최태원 김승연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저는 이런 게 보기 싫습니다. 잘난 아버지[각주:1] 만난 덕에 돈 버는 친구들, 그러면서도 범죄자가 되는 인간들, 이런 ‘양아치’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저는 싫습니다.


이제 다시 대구와 경북으로 가 봅시다. 여러분의 평균 소득이 진짜 여러분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명이 일 년에 십억을 벌고 나머지 아홉 명은 각각 천만 원을 버는 경우 그 지역 총 소득은 십억 9천만 원이 되고 평균 소득은 1억 9백만 원이 됩니다. 이게 바로 통계의 마법입니다.


여러분 지역에도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있죠. 그분들 몇 분 제외하면 여러분의 평균 소득은 천만 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구 경북의 ‘유지’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요? 먼저 조선 시대부터 땅이 많았던 집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탐관오리의 후손이거나 사화를 일으켜 정적을 살해하고 공신이 된 사람들의 후손일 것입니다. 조상이 탐관오리거나 살인마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첫 부류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친일파의 후손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땅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적극 협력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군사정권 때 남의 재산을 강탈한 자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입니다. 예를 들어 영남대학교는 박정희가 경주 ‘최 부자’가 지은 학교를 강탈한 것입니다. 그것을 물려받은 이가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분입니다. 부산 기반의 정수장학회도 박정희가 강탈한 것을 그분이 물려받은 것입니다.


네 번째 부류는 군사정권 때 군사정권에 빌붙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이들입니다. 대구 경북의 예는 아니지만 예컨대 SK그룹(원래 수원의 땅 부자였죠.)은 박정희 정권 때 석유공사(유공)를, 노태우 정권 때 한국이동통신을 부정한 방법으로 매입하였습니다. 노태우와 최종현이 사돈 사이인 것은 아시겠죠?


다섯 번째 부류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이 다섯 번째 부류가 가장 인원도 작고 부의 수준도 낮을 것입니다.


네 번째 부류까지가 현 질서를 옹호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다섯 번째 부류인 자수성가형 엘리트들과 평범한 ‘서민들’, 즉 대부분의 여러분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앞의 네 부류들의 거짓 선전과 선동을 평생 들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 믿는 것이지요. 북한 주민들의 다수는 진짜로 김일성이 신이고 김정일은 신의 아들, 김정은은 신의 손자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생 그런 허황된 얘기들에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탐관오리와 친일파와 군사정권과 군사정권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던 놈들에게 평생 세뇌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현 질서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대구경북 사람은 아니지만 김무성이라는 이가 있지요. 새누리당 국회의원입니다. 이 사람은 친일파 교과서(교학사)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여러 번 했습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는 것일까요? 단순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대개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저는 앞에서 우리 사회의 지배층을 꼴 보기 싫다고 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도 있습니다.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현 질서의 타파는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상기하라 1994, 그리고 1997


20년 전 저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물러나기만 하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 믿는 순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만 못한 대통령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하던 때였죠.


그런데 강남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이 무너지고, ‘바람 부는 날에는 가야 한다.’는 압구정동으로 가는 다리가 무너집니다.[각주:2] 세월 호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이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 후 3년, 대한민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경제 위기가 오고 그것은 외환위기로 발전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권의 무능 또한 그에 일조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듭니다.


김영삼 정부가 내건 경제정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세 가지 뿐입니다. △금융실명제. 이는 나름 긍정적인 것이었죠. △“갱제(경제)를 살리자.” △‘세계화.’


갱제를 살리자!와 ‘세계화’


“경제를 살리자.”는 지금 정권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창조경제.” 무의미하고 추상적인 구호. 


김영삼 정부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 등을 겪으며 ‘사고 공화국’이라는 말을 회자되게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경제 파탄을 가져왔습니다.[각주:3]


역량의 대부분을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쏟아 부었던 김영삼은 세상물정 모르는 짓을 했습니다. ‘세계화’를 표방한 것이죠. ‘Globalization’과는 다른 개념이라며 Segyehwa란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공무원들은 참 흥미로운 짓을 많이 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우리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기로 하죠. A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꽤 큰 광역시라고 가정하죠. 이 A도시에서 지역적으로는 매출 1위를 하는 A마트라는 곳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마트나 롯데마트도 그 지역에서는 1위를 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죠. 까르푸나 월마트가 한국에서 킴스클럽이나 이마트에 ‘작살난’ 걸 보면 특정 지역에서는 로컬 마트가 1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A지역 맹주 A마트가 ‘전국화’를 표방하고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A지역에서 A마트가 잘 되는 것을 그저 그렇게 바라보던 ‘전국구’ 조직들은 서울까지 진출하겠다는 A마트를 보며 처음에는 비웃다가 나중에는 ‘작살낼’ 기회로 삼습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연합하여 전국구 신참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것이 1997년 외환위기의 본질입니다.


김영삼은 몰랐을 것입니다. 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몰랐던 것은 소련 및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 (실제로는 당 간부들이 다 해먹는 국가자본주의)’가 붕괴한 것의 의미였습니다.


한국은 체제 경쟁이 벌어지던 시대의 ‘자본주의의 쇼 윈도우’였습니다. 서독에서 ‘라인 강의 기적’이 있었고 남한에서 ‘한강의 기적’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 등은 서독이 그리고 남한이 경제적으로 동독이나 북한을 압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남한 경제 발전을 열심히 도와줍니다.


삼성동에 있었던 에이드(aid 즉, 도움 혹은 원조) 아파트 건설 돕기나 밀가루 공여 등의 원조 및 차관의 공여 등을 통해 미국이 남한에 다양한 도움을 준 이유에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 승리 돕기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던 시기에 동구권은 몰락했고 이제 체제 경쟁은 끝난 것으로 보였죠. 이제 남한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돕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몇 가지 산업에서는 미국 기업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존재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동네 슈퍼 주인 김영삼이 ‘전국화’를 선언하고 ‘무한경쟁’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미국 등 초강대국들은 한국에 IMF 주도의 구제 금융을 주고, 이자와 자본 투자로 한국의 부를 ‘깔끔하게’ 챙겨갑니다.[각주:4]


게다가 수장이 무식하면 ‘아랫것’들은 제 욕심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게다가 이 당시의 관료들은 일 잘못하면 보안사나 안기부로 끌려가 고문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 또, 수장이 무식하니 기업들도 방종의 극치를 달립니다.


루마니아 체코 우즈베키스탄 폴란드 등에 동시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대우 김우중이 그 대표자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은 것은 알겠는데, 어찌 그 많은 일을 동시다발로 벌인단 말입니까?


경제에 대하여 무지한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세운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삼풍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와 국가경제의 붕괴라는 ‘트리플크라운’을 업적으로 달성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지 꼭 20년 만에 비슷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실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국정원의 불법 개입 등을 보면 부정 없이 당선되었을 지 의심스럽습니다. 근데 그것은 그렇다고 치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무얼 하려는가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1. 복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폐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자기 자신의 정책을 잘 몰랐거나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박근혜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고, 새누리당 전체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 경제: ‘창조경제’. 근데 이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듯 합니다. 싸이를 예로 든 것 말고는 어떤 설명도 하지 못합니다. 싸이의 예도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말춤 추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특이한 짓을 하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인지, 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3. 전체적 기조: ‘규제의 철폐’.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죠. 이번의 참담한 사건을 보면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살인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둘의 이미지는 얼마나 비슷합니까? 정치는 고수이나 경제 및 복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는 강했지만, 되고 나서 무엇을 할지는 너무나 모호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던 두 명이 있습니다. 김영삼과 박근혜. 이들은 대통령이 되고 바로 물러났거나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아무 일 하지 마시고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상징적 국가 원수 하시다가 조용히 퇴장하십시오.


저는 두렵습니다. 제2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수장이 무식하면 경제 붕괴는 시간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원전 외교한다고 나갔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십시오. 세월 호 참사 이후 누가 한국에 원전 관련 사업을 주겠습니까? 누가 한국 배를 타려 할까요? 누가 한국 배를 사려 할까요? 누가 한국에 관광을 오고 싶을까요? 물론 외국에도 정신없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것은 과장이겠죠. 하지만 어쨌든 ‘주식회사 한국’의 가치는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이나 대구 출장 때 절대로 ‘KTX 산천’ 타지 않습니다. 무섭거든요. KTX는 프랑스 기술이고 산천은 한국 기술로 한국에서 만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안심하겠습니까?


대구 경북 주민 여러분. 경제위기와 거듭되는 사고를 바라십니까? 사고는 경기도에서만 일어나고, 전라도 쪽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근혜는 선교사 한 명이 죽었을 때 노무현 정부의 존재 가치를 회의한다고 했고 실제로 그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주장에 대개 동조하였습니다.


우리 똑같이 해보자고요.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많은 서울 사람들은(저를 포함하여) 박근혜 정부의 존재 가치에 회의를 품습니다. 여러분. 박근혜 정부의 존재 가치에 회의를 품는 것에 동조해야 일관된 것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의 퇴진, 혹은 그가 상징적 대통령 역할만 하고 실질적 일은 거국중립내각이 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와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생긴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생긴다면, 우리 모두는 1950년대와 같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원자력발전소의 소재지 문제입니다. 원전은 대개 경남 및 경북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고가 난다면 대한민국은 끝입니다. 그리고 경남 경북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접한 이 정부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들이 원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십시오. 두렵지 않습니까?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대구 경북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경상북국’이라는 나라의 시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민입니다. 


여러분도 동참하는 안전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아름다운 사회의 건설, 저는 그게 정말 보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 2014.05.26



  1. 그것도 잘났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게, 이승만 박정희 때 정치권에 줄 잘 대서 성장한 회사들이 대부분입니다. 삼성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한 물품들인 설탕이나 밀가루, 옷감 같은 것들을 ‘유상’으로 국민들에게 파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삼성의 전신이 된 회사들 이름을 보세요. 제일제당, 제일모직. 소위 ‘삼백 산업’으로 뜬 것이 삼성입니다. 그렇게 돈 벌어 반도체로 눈을 돌린 이병철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지만, 부정하게 종자돈을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본문으로]
  2. 성수대교 붕괴는 김영삼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닙니다. 오히려 1977년에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와 동아건설 회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1977년이 어떤 때죠? 유신 말기로 접어드는 시점입니다. 아내를 잃은 후 낮에는 막걸리 마시고 밤에는 여대생 옆에 끼고 시바스리갈 마시며 일은 차지철이니 이런 쓰레기들에게 맡긴 상태였죠. 공무원들 기강이 개판이었음에 틀림없고 공무원 기강이 개판이면 건설회사 또한 날림 공사를 하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태의 책임도 가장 크게는 이명박에게 있습니다. 대통령부터 강바닥 파고 보 만들어 돈을 챙기려 하니 밑의 공무원들 기강은 어떻겠습니까? 다들 해먹기 바쁘고 안전 같은 돈 안 되는 일에 신경을 쓸 리가 없죠. 게다가 해양수산부를 없앤 것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두 번째 책임 주체는 현 대통령입니다. 규제완화 정책은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엄청난 독이 됩니다. 게다가 사고 발생 후의 대응도 우왕좌왕했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정보를 차단하고 민심을 조종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죽을 죄’입니다. [본문으로]
  3. 앞서 말했지만 사고들의 근원은 김영삼 탓은 아닙니다. 성수대교는 1977년에 완공되었고, 유신 말기 때입니다 이때의 재벌들과 공무원들의 행태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삼풍백화점은 1989년에 영업을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 때죠. 아파트를 초단기간에 200만 호나 지으려 했으니 부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죠. 노태우 때 지은 건물들, 전부 다 안전 검사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4. 외환은행을 인수하여 조 단위의 돈을 챙겨간 론스타 펀드가 하나의 예입니다. 참고로 론스타(Lone Star)는 미국 텍사스 주 기반의 금융 자본입니다. 텍사스는 부시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죠. 또 하나의 예는 골드만삭스입니다. 이들은 진로(참이슬!)를 샀다가 되파는 과정에서 역시 조 단위를 챙겨갑니다. [본문으로]

댓글0